이래학(증플캠퍼스 강사)

사업보고서, 공시, 재무제표 기반의 투자 포인트 찾기

삼성엔지니어링 과장님의 '고민'

2016/01/09 10:41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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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엔지니어링
요약
<출처: 자체제작>

 

한 폭의 그림이 있습니다. 어두컴컴한 밤, 산 위에 떠 있는 보름달이 유난히 밝아 보입니다. 재테크 용도로 이 그림을 시세보다 싸게 살 수 있는 옵션이 주어졌습니다. 시세보다 싼 건 좋은데, 그림의 가치를 모른다면 실제 싼 게 싼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떨어지는 주식을 바라보는 투자자의 고민거리도 이런 것이겠죠.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삼성엔지니어링에 다니는 7년차 과장입니다. 다짜고짜 하는 말이 

 

“유상증자 청약, 해야 돼? 말아야 돼?”

 

대규모 적자를 낸 삼성엔지니어링은 자본잠식을 탈피하기 위해 최근 유상증자를 실시했습니다. 임직원 역시 유상증자 참여 대상입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기본으로 배정되는 물량이 1인당 2010주이며, 10년차 과장급은 그 규모가(금액 환산 시) 4840만원에 달합니다. 

 

일반적으로 유상증자는 기존 주주들에게 시가보다 싸게 주식을 청약할 권리를 줍니다. 때문에 주주들은 청약을 할지? 말지? 고민이 생기죠. 긍정적인 시나리오를 그려 보자면, 대규모 자금조달로 기업이 기사회생해 주가가 빠르게 회복된다면 투자자는 큰 수익을 낼 수 있습니다. 반면, 워낙 사정이 좋지 않다 보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습니다. 

 

이쯤에서 한 가지 사실을 말씀드리면, 아까 그 그림은 ‘삼성엔지니어링’의 주가 차트입니다. 5년간 꾸준히 주가가 하락해 산(山)을 그리고 있어 필자가 살짝 각색을 해봤습니다. 오랜 기간 산을 만들며 내리막 길을 걸었던 삼성엔지니어링이 이번 유상증자를 계기로 턴할 수 있을까? 삼성엔지니어링 주가 차트를 보고 있는 과장님의 고민입니다. 

 

<출처: WiseFn>

 

결국 BM(비즈니스 모델)이 문제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쉽게 말하면 전문 건설사입니다. 업계 용어론 ‘엔지니어링’이라고 하는데, 단순히 건물만 짓는 것이 아니라 사업성 검토, 설계, 자재조달부터 시공 및 운전, 유지보수까지 총체적으로 담당하는 것입니다. 엔지니어링이 적용되는 건설 분야는 플랜트입니다.

 

삼성엔지니어링이 집중하고 있는 분야는 화공(화학공업)플랜트인데, 정유, 석유화학, 화학, 정밀 화학 플랜트 등을 말합니다. 화공플랜트 카테고리의 공통점은 ‘기름’입니다. 정유 및 각종 화학 플랜트의 기초 소재는 기름입니다.

 

삼성엔지니어링이 지금의 꼴이 난 것 역시 기름 탓입니다. 산업이 쌀이라 불리는 원유(기름)는 과거 국내 건설사들이 해외로 진출하는 교두보 역할을 했습니다. 국제 유가가 고공행진을 거듭하며 석유 개발 붐이 일자,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이 있는 국내 건설사들이 대거 해외로 진출한 것입니다. 삼성엔지니어링은 그 중 단연 으뜸이었습니다. 

 

그러나 유가의 상승세가 둔화되기 시작했고, 급기야 작년 2014년 4분기부터 급격히 하락해 고점 대비 1/3 토막났습니다. 두바이유는 배럴당 30달러 마저 붕괴돼 11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가가 하락하면서 지난해 해외 건설수주액은 461억 달러로 전년보다 30% 줄었습니다. 

 

<출처: 해외건설협회>

 

그런데, 유가 하락 및 수주 감소가 삼성엔지니어링의 대규모 적자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지난해 삼성엔지니어링의 실적에 영향을 미쳤던 수주는 2011~2012년에 이뤄진 것입니다. 유가가 빠진 것은 2014년 4분기부터 이고요. 

 

여기에서 수주 산업 BM(비즈니스 모델)의 한계가 드러납니다. 필자가 삼성엔지니어링이 뭐하는 업체이고… 하며 구구절절 늘어 논 것도 BM 설명을 위해서입니다. 

 

플랜트 산업은 대표적으로 수요과 공급의 불일치가 일어나는 분야입니다. 쉽게 설명하면 이런 겁니다. 산유국은 견조한 유가에 따라 플랜트 설비를 발주합니다. 

 

“지금 정도 가격이면, 기름을 쫙쫙 뽑아 볼만하겠는걸?”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플랜트는 공사기간이 상당히 깁니다. 적어도 2~4년이 걸리죠. 즉, 산유국이 플랜트 설비를 실제 가동하는 시점은 2~4년 후란 얘깁니다. 만약 유가가 발주 시점처럼 견조하게 유지된다면 문제될 게 없습니다. 

 

문제는 2~4년 전과 현재 상황이 달라졌을 때입니다. 발주 시점엔 유가가 100$였는데, 막상 플랜트가 완성됐을 때 반 토막이 났다면? 

 

“젠장, 괜히 발주했네…”

 

하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이 실제로 전개된 것입니다. 

 

<유가 & 플랜트 발주 관계 / 출처: 자체제작>

 

문제는 또 있습니다. 플랜트 계약금액이 1조원이라면, 발주처는 이 돈을 언제 줄까요? 엔지니어링 업체 입장에선 선불이면 베스트입니다. 하지만 음식점도 10중 9곳은 후불이죠. 실제 플랜트 업체는 일정기간 동안 중도금을 받으며, 주로 완공된 시점에 계약금의 상당부분을 받습니다. (해비테일 방식) 

 

그런데 유가가 급락하면 발주처는 원래 계약했던 돈을 주고 싶을까요? 당연히 주기 싫을 것입니다. 기름을 팔아 먹고 사는 사업 모델인데, 기름 값이 떨어지니 계약금액을 지불할 여력도 없을 수 있습니다. 때문에 완공 시점이 다가오자, 계약금액 등 여러 계약 조건들이 조정됩니다. 이런 과정에서 공사 완공 시점이 지연되며, 결국 대규모 손실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런 징조는 재무제표 상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매출채권및기타채권 회전일수가 급격히 증가’한다거나 ‘영업현금 적자’, ‘순차입금 증가’ 등입니다. 이 3개 항목은 서로 연결돼 있습니다.

 

매출채권및기타채권은 큰 틀에서 ‘판매했는데 아직 못 받은 돈’입니다. 매출채권및기타채권 회전일수는 돈을 돌려받는 기간을 의미합니다.

 

<자료: 삼성엔지니어링 사업보고서>

 

이 기간이 길어진다면, 공사는 진행되는데 발주처에서 돈을 잘 안주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순이익은 흑자인데, 영업현금이 적자인 경우는 이럴 때 발생합니다.

 

<자료: 삼성엔지니어링 사업보고서>

 

현금이 없으면 공사를 진행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돈을 빌릴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삼성엔지니어링은 이런 상황이 이미 2012년부터 지속돼 왔습니다.  

<자료: 삼성엔지니어링 사업보고서>

 

삼성엔지니어링 유상증자의 발단은 국제 유가 하락이지만, 결국 수요 – 공급의 불일치라는 비즈니스 모델이 낳은 비극이라 볼 수 있습니다. 

 

유증에 참여한 과장님의 성공 조건

 

삼성엔지니어링은 1조5000억원에 달하는 영업적자로 수십년 간 쌓아온 자본을 날렸지만, 최근 분위기는 나쁘지 않습니다. 이재용 부회장이 유상증자 실권주 발생 시 최대 3000억원까지 참여할 의지가 있다고 밝혔기 때문입니다. 

 

비핵심 계열사라고 판단되면 가차없이 매각했던 모습과 사뭇 다릅니다. 달리 말하면 삼성엔지니어링은 앞으로 그룹 차원에서 기대할만한 시너지 효과가 있는 셈입니다. 

 

삼성 그룹 차원에서 육성하고 있는 바이오 사업이 명분인 것 같습니다. 바이오는 삼성이 신성장 동력으로 점 찍어 논 분야입니다. 삼성물산의 자회사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세계 최대 바이오시밀러 업체를 꿈꾸며 올해 나스닥에 상장할 계획입니다. ‘해외 투자자의 이목을 집중시키겠다!’라는 행보로 삼성의 포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삼성엔지니어링은 바이오시밀러 공장 건설에 역량을 투입할 것으로 보입니다. 자본잠식으로 상폐위기에 몰렸지만, 기술력이 좋은 것은 확실하기 때문이죠.

 

다만 이 것만으론 부족합니다. 기존 화공플랜트에 집중됐던 부분을 발전, 환경 설비 쪽으로 분산해야 합니다. 아무리 대규모 손실을 떨궜더라도 유가가 바닥인 구간에서 여전히 화공플랜트 쪽에 연연했다간, 언제 같은 일이 발생할 지 모릅니다. 

 

자본잠식으로 망가진 재무구조 개선도 필요합니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이를 위해 유상증자와 더불어 상일동 사옥(3500억원)을 매각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삼성엔지니어링의 홈페이지 IR자료실에 게재된 ‘2016년 경영전망’을 보면 위와 같은 내용을 잘 정리해 놨습니다. 회사 측에서 제시하는 올해 예상 영업이익은 2280억원입니다. 영업외손익과 법인세를 감안하면 순이익은 적어도 1500억원이상 나올 것입니다. 현재 시가총액이 5000억원 내외로 예상 실적 대비 P/E는 3.XXX로 상당히 낮은 수준입니다. 

 

물론 리스크는 있습니다. 아직 유가가 급락하기 전 수주한 물량이 남아있기 때문이죠. 진행되는 프로젝트가 매출액으로 반영되면서 손실이 또 발생한다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매출채권및가타채권 회전일수의 하락, 영업현금의 (+) 전환도 같이 진행되어야 할 것 입니다. 

 

사실 유상증자 청약에 대한 삼성엔지니어링 과장님의 선택은 정해져 있습니다. 계속해서 회사에 남는다고 한다면 말이죠. 개인적으로 봤을 땐, 청약하지 않고 정상적인(?) 회사 생활은 힘들어 보입니다. 결국 유증에 참여할지? 말지? 고민은 회사를 계속 다닐지? 말지?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 같습니다.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나네요. 필자가 취업을 준비했을 때만 하더라도 엔지니어링 분야는 상당히 각광받았습니다. 연봉도 대기업 중 ‘탑’이었고요. 당시 삼성엔지니어링은 수년간 30%의 ROE를 유지했었습니다. 그 당시 입사한 동기들이 현재 과장직을 달고 고민하는 형국입니다. 

 

주식 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에 찍힌 숫자만 보고 투자를 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합니다. 현재 성과가 지속가능한가? 앞으로도 유망한가? 비즈니스 모델이 어떤가?에 대한 질문을 먼저 던져보고 의사결정을 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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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큐
2016/01/16 09:56 AM

권리락 받았읍니다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모래거부기
2016/02/07 12:25 PM

삼엔의 위기가 "이런 징조는 재무제표 상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매출채권및기타채권 회전일수가 급격히 증가’한다거나 ‘영업현금 적자’, ‘순차입금 증가’ 등입니다. 이 3개 항목은 서로 연결돼 있습니다." 라는 것ㅇ

모래거부기
2016/02/07 12:41 PM

라는 것에는 상당 부분 동의하지 못하겠네요... 동종 업계 종사자들은 대부분 알겠지만, 유가가 한창 고공 행진을 하던 2010 ~ 2014년 초반까지 중동과 남미 중앙 아시아 등에서 플랜트 발주가 상당히 많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것도 조단위의 메가 프로젝트 발주 물량들이 많이 쏟아져 나왔지요.
이 때 가장 많이 수주를 한 업체가 삼엔입니다. 하지만 이 때 수주한 대부분의 발주분이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딴 것들이라 저가 수주가 많았습니다. 이 저가 수주로 인해 적자 공사가 이루어 지고 있는 것이지요. 삼엔 뿐 아니라 이 즈음에 다른 대형 건설사에서 수주한 EPC 프로젝트의 상당수가 적자 였습니다. 제가 다니는 회사의 제가 참여한 프로젝트만해도 2~3천억 정도 손실이 발생했습니다.
2~3년 동안 몇 개 프로젝트에서 2~3천억씩 손실이 발생하면 그 어떤 회사도 재무 구조가 위험해 줄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의 상황은 저가 수주와 공사 관리 미숙으로 인한 손실에 기인한 것이지 절대 미수 채권 때문은 아닙니다. 사실 대부분 중동 EPC 공사 계약서를 보면 기성은 월별 progress 기성 지급이 원칙 입니다. 즉 매월 기성 실적을 어떻게 정량화해서 % 로 환산 할지 미리 공사 초기 발주처에 승인을 받고 이대로 기성을 올려 발주처가 검토 후 기성을 지급하게 됩니다. 그리고 발주처는 자금 집행 계획을 세우기 위해 건설사에 입찰 때부터 프로젝트 기간 동안의 cash flow 를 제출하도록 요구 합니다.
통상 해당 월 기성은 발주처의 검토 기간이 필요 하기 때문에 대략 1 ~ 3 개월 후에 지불이 됩니다만, 공사를 한 부분에 대해서 대금 지급이 이루어 지지 않는 부분은 거의 없습니다. 건설사들의 경우, 이러한 대금이 한 두번 늦게 지불되면 바로 클레임을 걸든, 투입을 현저히 줄여 cash flow 를 맞추게 됩니다.

이해하기 쉽게 그럼 적자가 왜 발생하는 지 설명 드리겠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공사에 큰 금액 비중을 차지하는 장치를 구매 하는데 입찰 때는 한 천억을 예상 했는데, 실제 공사를 진행하면서 장치를 사려다 보니 천오백억으로 가격이 오르면 당연히 손실이 발생합니다. 또 공사 기간을 2년으로 잡고 이에 따라 인원과 장비에 대한 비용을 산출 했는데, 공사 기간이 늘어나 3년이 되면 직접비/간접비를 포함한 엄청난 손실이 발생합니다.
여기에 더해 삼엔은 발주처로 부터 공사 지연에 따른 LD (lquidated damage - 지체보상금) 을 부과 받은 프로젝트도 있습니다. (제가 했던 프로젝트의 downstrea project 가 삼엔에서 수행한 것이었는데 바로 이런 case 였습니다.) 통상 지체 보상금이 최대 계약 금액의 5 ~ 10% 까지 계약서에 규정이 되어 있으므로 이 금액만 해도 무시 할 수 없는 것이지요.

다만 다른 메이져 건설사들은 대다수 EPC 플랜트만을 주력 사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국내 건축/재개발 사업/ 전력 & 인프라/환경등을 병행하는 어느 정도 다양한 포트 폴리오를 가지고 있고, 당시 삼엔보다 수주량이 적었던게 지금에 와서 삼엔보다는 위기가 덜한 이유 입니다.

어쨌든 다른 메이지 건설사 대부분도 당시 수주한 대형 EPC 공사에서 상당한 손해를 입었고, 제가 알고 있는 것만 해도 대림/GS/ SK /현대 모두 많은 손실을 입었습니다.

담좀타던녀석
2016/02/19 01:10 AM

모래거부기님이 현 업 종사자로서 정확한 글을 적어주셨네요...
저 역시 동종업계 종사자로서 굉장히 구체적인 글이라 생각합니다.
큰 그림의 문제는 모두가(?) 알고있는 국내사들 끼리의 치킨게임의 결과물이죠...
그 게임에 승리했던 삼엔이 지금 승자의저주에 빠진거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