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형(파티게임즈 CEO)

중국 인터넷과의 대화

칠종칠금, 중국 인터넷과 대화하다 (8) 소후 장차오양, 인터넷 영웅의 우울증 극복기

2015/05/19 08:38AM

요약

장차오양은 1964년 산시성 시안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가장 우수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교육 아래 우수한 성적으로 17세에 청화대에 입학했으며 졸업한 후에는 미국의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로 유학을 갔다. 대학시절에는 친구들과 함께 ‘누가 더 빨리 숙제를 완성했는지’ 혹은 ‘누가 제일 공부를 오래 하는지’ 등등처럼 끊임없이 시합을 했다고 한다.

1990년대 중반, 곳곳에서 인터넷이 활성화되기 시작했고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얻은 장차오양은 중국으로 돌아와 소호를 창립해 시나, 넷이즈와 함께 중국 초창기 인터넷회사로 어깨를 나란히 했다.

장차오양은 빠른 시간 내에 중국에서 스타 기업가가 되었다. 1998년도에 소호가 잘되면서 1999년도에는 선전에 <数字化生存> 가서 광고도 했다. 그 당시 사람들은 가수나 연예인보다 성공한 창업가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았다. 그의 유명세는 전 세계 인터넷 영웅 50인(미국 타임지, 1998년 10월), 세계 25인의 새로운 창업자(포춘지, 2001년 5월)에 선정될 정도로 컸다.

그렇게 성공의 가도를 걷던 중 2012년 장차오양이 갑작스럽게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일년 가까이 잠적하며 세상과 단절된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2011년부터 장차오양은 우울증으로 일상생활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이를 극복하기가 힘들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가 떠나있던 2012년 중국에서는 “당신은 행복한가?”란 담론이 크게 유행했다.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 사회에서 사람들의 스트레스는 증가했으나 행복도는 감소하고 있었다. 사회와의 단절을 선택했던 장차오양의 행동은 당시 중국의 담론과 마찬가지로 ‘행복’과 연관돼 있었다.

그는 자신에게 가장 슬펐던 해가 2012년이라고 표현했다. 초조하고, 우울하고, 다른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공포감이 들었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그저 ‘부와 명성을 둘 다 가진 멋진 기업가’였던 그에게 대체 무슨 일이 생겼길래 성공적이었던 사업과 회사관리도 포기하고 일년간 사회와 단절되어 있었던 것일까? 장차오양과의 대화를 통해 진솔한 답변을 들어보도록 하자.

이대형: 2012년 용의 해를 가장 우울한 해였다고 표현했다. 슬픈 감정이 언제부터 당신의 생활로 다가왔는가? 또한 당신이 이러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깨닫게 되었는가?

장차오양: 허망함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당시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고 혼자 있고 싶었다. 이러한 상태가 스스로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고 즉각적으로 사회에 대한 공포증으로 나타났다.

이대형: 사람들과의 교류에서 어떠한 공포감이 생겼다고 말했는데, 제일 심했던 것은 무엇이었나?

장차오양: 차마 표현할 수 없는 공포감들이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 내면에 있는 공포감은 말하고 싶어하지 않을 것 같다. 성공한 이후 유명해지면서 많은 미디어들이 따라다니고, 주위 사람들에게 쫓기고…… 이런 것들이 성공한 나 자신을 관리하는 데에 있어서 문제를 일으킨 것 같다. 성공한 사람은 어떤 일을 할 때 반드시 자신의 생각에 따라야 한다거나 완벽주의자가 되어야 한다는 식의 강박관념을 가지게 되기 쉽다. 바로 결과를 컨트롤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대형: 당시 아침에 일어나면 일하러 가기도 싫었겠다.

장차오양: 맞다. 내 자신에게 문제가 생겼기 때문에 가고 싶지 않았다. 내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고 그래서 무서웠고 괴로웠다. 당시 내 정신적인 문제들을 해결해야만 일에 집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해서 불안한 상태가 지속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회사 사람들에게 일을 못 하겠다고,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말했고 그들은 나를 이해해 주었다. 미국의 심리치료의사에게도 가보는 등 많은 방법들을 총동원했고 결국 해결방안을 찾아냈다. 그 기간 동안에는 일을 많이 하지 않았다.

이대형: 당신처럼 똑똑하고 의지력 강한 사람들이 정신적인 우울함이나 초조함을 더 쉽게 얻을 수 있을까?

장차오양: 성공에 도취되어 있었다. 게다가 주변에서 제어해주는 사람이 없다 보니 내 행동 중 여러 부분에서 스스로도 놀랐던 적이 많았다.

이대형: 당신은 돈도 많고 유명하다. 인정하는가?

장차오양: 인정한다. 나는 좋은 교육을 받았고 돈도 있으며 유명하다. 또한 신흥산업에 종사하고 있고 중국에 인터넷을 들여왔다. 나는 행운아다. 당시 내가 받은 관심들, 사회에서 나에게 보여준 존중과 우러름은 내게 깊은 인상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나 스스로에게 일종의 허영심을 가지게 하였다. 겉으로는 겸손하게 행동했을지 모르지만 마음속으로는 굉장히 거만해져 있었다. 내가 만났던 다른 사람들이나 연예인 혹은 유명인들은 이런 종류의 거만함은 갖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이대형: 아마도 그들은 아내와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혹시 결혼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닌가? 불교에서 ‘사람은 반드시 의지할 곳이 있어야 한다’라 말했는데, 쉽게 말해 나이가 되었는데, 결혼을 안해서 생긴 문제는 아니었나?

장차오양: 예전에는 결혼이나 아이들을 반대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귀국한 뒤 점점 더 유명해질수록 굳이 결혼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것이 유명세가 내게 가져가준 쓸데없는 생각 중 하나다. 만약 당신 마음이 의지할 곳이 생긴다면, 자비와 사랑 혹은 연민의 감정들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거나 사랑하게 되면, 예를 들어 당신의 아이나 사랑하는 사람, 여타 다른 사람들을 대상으로 말이다. 그렇게 되면 아마도 당신은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게 될 것이다.

내 경우 유명해지고 돈도 많아졌으나 관심을 가질 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나 스스로에게 갖는 관심만이 커졌고 나중엔 심해져 마음의 병이 생겼다. 이 마음의 병이 심각해지면 일에 대한 의지가 사라질 뿐만 아니라 사회로부터 자기 자신을 점점 멀리 떨어뜨려놓게 만드는 것 같다.

이대형: 인류가 생활함에 있어서 전통 생활방식의 지혜와 진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았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장차오양: 맞다. 전통 풍습은 굉장히 지혜로운 것이다. 사람은 관례를 뛰어넘을 수 없다. 관례를 뛰어넘으려는 사람들 혹은 뛰어넘은 사람들의 최후는 모두 참혹하다.

이대형: 당신이 예전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중국 인터넷시장의 첫 창업자로서, 나는 괴로울 만큼 괴로웠고 이젠 싫증이 난다." 다른 사람들은 이런 괴로움에 대하여 상상해볼 수는 있지만 직접 겪어볼 수는 없을 것이다. 1995년부터 오늘날까지의 발전과정에서 당신이 말한 괴로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때는 언제인가?

장차오양: 제일 힘들었던 때는 1999년이었다. 1999년에 두 번째로 투자를 받아 주주들 사이에서 나에 대한 신임이 낮아진 상태였다. 1998년에는 소호가 잘될 때 내 사업계획이 유출됐고, 1999년에는 시나가 우리에게 굉장히 큰 압박을 주었었다.

우리에게 1999년이란 경쟁자들에게 추월 당하고 주주들로부터 이를 이해받지 못해 CEO를 교체하자는 항의를 시도 때도 없이 받던 해였다. 그들은 종종 미국에서 사람을 데려와 앉혀 놓았는데 나는 그렇게 되면 회사는 곧 망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래서 나는 회사에 대한 이런저런 일들을 다 관리하는 동시에 이사회와 싸우느라 굉장히 바쁜 시간들을 보내야만 했다. 투자를 감행한 주주들은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괜히 이래라 저래라 말만 많았다. 나는 은행에 가야 했고, 정보 산업부에도 가야 했고, 그밖에 많은 일들을 처리해내야 했다. 동시에 매일매일을 CEO 자리에서 쫓겨날 지도 모른다는 압박감에 시달려야 했다.

2000년 4월 시나가 먼저 상장했는데, 상장하기 전 마지막 순간까지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이대형: 당시에는 어떤 기분이었는가? 낙심해 있었나?

장차오양: 나는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굉장히 꿋꿋하게 잘 견디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불안한 마음에 너무 힘들었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이 눈에 띄게 의기소침해 있다보니 그들을 다독이며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다.

이대형: 하지만 각종 미디어 및 국민들 앞에서의 활달한 모습이 창업 초기에 큰 성과를 거둘 수 있게 해준 계기가 된 것 같다. 광고에 투자할 자본이 넉넉하지 않았던 창업 초기 때 사람들 앞에서 당신이 보여줬던 활발한 성격은 일종의 재주라고 하자. 이런 점들이 회사의 인지도를 굉장히 높여줬던 것 같다.

장차오양: 당시 미디어에 많은 심혈을 기울였었다. 마음이 급했었다. 기술적인 부분에서 시나에 많이 뒤떨어져 있었던데다가 갑자기 시나가 잘됐으니 안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내가 직접 나서서 광고해야겠다 판단하고 대학교 순회강연을 포함해 하루에 다섯 번도 뛰었다. 이런 전략이 우리 브랜드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렇게 중국에서 광고하고 다니는 내 모습을 본 몇몇 주주들이 ‘잘난 척하고 싶어서 미디어에 많은 시간을 쏟는다’고 오해해 CEO 자격에 어긋난다고 질책하기도 했다. 1999년부터 2003년까지 약 4년의 시간이 흐른 후 이사회와의 전쟁은 대부분 마무리되었다. 4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들을 현지화시키는 데 많은 논쟁들이 있었다.

이대형: 다시 전쟁터로 돌아왔는데, 상황은 더 치열해진 것 같다. 이제는 과거와 같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일에 매진할 수 있을 것 같은가?

장차오양: 사실 일에 대해서 지금은 담담한 상태이다. 예전의 내 목표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이었고, 어떻게 하면 더 자신을 위대하게 만들까를 고민했다. 전과 같았다면 리옌홍이 나를 초월하는 모습을 보면 초조하고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았을텐데 지금은 아무렇지 않다.

이대형: 그러한 경쟁에서 담담해질 수 있다면 대가의 반열에 들었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은퇴할 생각은 안 해보았나?

장차오양: 하하. 또 다른 변화에 관해 말하자면, 예전에는 경쟁이고 뭐고 다른 사람한테 소호를 맡긴 뒤 비행기 타고 파리 가서 커피를 마시거나 모래사장에서 배구를 치거나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매일 일을 하는 것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함이 아니라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과정이라고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제 일을 하는 것이 인생의 큰 즐거움이라고 생각한다. 파리에 가서 커피를 마신다 한들 몇 잔이나 마실 수 있겠는가. 질리지 않겠는가?

이대형: 오늘날의 장차오양과 예전의 장차오양에겐 어떤 차이가 있는가?

장차오양: 굉장히 큰 차이가 있다. 지금의 나는 방금 전에 말했던 행복관에 더 가까워졌다. 겸손해졌고 세상과도 친해졌다. 예를 들어 내 기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든지, 아침식사를 하러 갔을 때 종업원과 수다를 떤다든지…… 이제는 연말 축하문자에 빠짐없이 답장한다. 예전에는 하나도 답장하지 않았었다.

과거의 장차오양은 목적성이 굉장히 강했던 사람이었다. 파티에 참석했는데 다른 사람이 나와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속으로 ‘날 이용하고 싶어하는구나’라고 생각했고, 여자가 말을 걸었는데 예쁘지 않으면 대꾸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달라졌다. 우리 인생의 매순간에 많은 의미가 담겨져 있다. 의미가 있는 과정 중 바로 몇 분 전에 나와 마주친 사람, 이야기한 사람들은 내 인생에 있어 매우 중요한 사람이다. 내 인생에서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며 나는 이에 대해 매우 감사해하고 있다. 이 점이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서 가장 큰 차이일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이 아닌 미래를 위해, 내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는지, 미래의 더 좋은 효과를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을 신경쓰지 않고 오롯이 감사하는 마음에만 집중한다.

예전에는 돈이 많을수록, 유명해질수록 보다 더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었다. 비행기를 바꿔가며 주말 동안 친구들과 함께 파리에서 커피를 마신다거나 여러 남녀친구들과 해변에서 배구를 하는 등 많은 돈으로 하고 싶은 것들을 다 할 수 있는 삶, 돈이 많을수록 자유로워지는 생활이 곧 행복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난 2년이란 시간 동안 나는 돈이 무조건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도덕적으로, 원칙적으로, 정신(영혼)적으로 스스로를 관리하지 못한다면 돈이 아무리 많아도 행복해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예전에는 다른 사람들이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하면 가식적이라고 폄하했다. 물론 지금도 어디선가 이 말을 들은 어떤 사람이 나를 향해 가식적이라고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이다.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사고 싶은 것 전부 살 수 있었던 과거의 내가 괴로웠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한 번 고통을 겪고 나서야 깨달은 진실들이다.

장차오양: 이대형에게도 묻고 싶다. 이제 당신도 한국에서 창업자로 꽤 유명하고 상장도 하였고, 꽤 많은 돈을 벌지 않았나? 이루고 싶은 것을 이루었는가? 그리고 행복한가?

이대형: 사실 당신의 이야기를 들으며 많은 생각을 했다. 스스로 성공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지금까지의 성과도 만족스럽지 않다. 늘 회사를 위태롭게 하는 일들이 많이 생기고, 경쟁자들이 앞서나갈 때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는 점은 원래 목표했던 바에 비해 훨씬 더 많은 것들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래도 아직은 더 큰 성공이 간절하긴 하다.

장차오양: 요새 개인적인 고민은 무엇인가?

이대형 : 회사와 개인을 분리하기 어렵지만, 결국 어떻게 살아야하나? 나는 무엇을 잘하는 사람이고 무엇을 할 때 행복한 사람인가?등에 대해 많이 생각해본다. 대학생들이 많이 하는 것 처럼 일종의 진로고민 이라고 할 수 있겠다. 회사의 고민과 연결시켜 생각해보면 "앞으로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성장할 것인가?"의 문제인것 같다.

장차오양 : 사람이고 기업이고 성장을 멈추는 순간 여러가지 문제가 생기는 것 같다. 그 어떤 기업도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성장할 수는 없고 빨리 오르면 빨리 내려오기도 한다. 항상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기고 문제는 곧 스트레스이다. 고민은 치열하게 하되 고민하는 과정 조차도 즐기고 감사하게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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