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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형(파티게임즈 CEO)

중국 인터넷과의 대화

칠종칠금, 중국 인터넷과 대화하다 (4) 텐센트 마화텅, 끊임없이 혁신을 이루는 방법

2015/04/24 08:47AM

요약

이대형: 텐센트는 정말 대단하다.

마화텅: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이대형: 위챗의 성공 때문이다. 어마어마한 위챗 사용자 수와 트래픽은 결과적인 성과일 뿐이고, 내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QQ라는 PC 온라인 메신저를 가지고 있는 텐센트가 모바일시장에서 위챗을 성공시킨 그 과정이다. 텐센트 정도의 큰 회사가 어떻게 내부에서부터 자기 파괴적인 혁신을 이루어낼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마화텅: 위챗을 한국의 카카오톡이나 미국 왓츠앱의 카피캣 제품 중 하나로 폄하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흥미로운 관점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이대형: 한국에서 카카오톡이 처음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은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여겼다. 이미 네이트온이라는 PC 메신저가 막대한 사용자 수를 가지고 있었고, 네이트온이 모바일에 진출하면 결국 그들이 시장을 장악할 것이라는 게 공통된 의견이었다. 그렇지만 네이트온의 모바일 버전이 출시되었고, 결과는 완전히 달랐다.

마화텅: 그때 한국의 모바일시장에는 어떤 일이 있었나? 당시 신생기업이었던 카카오는 어떻게 네이트온을 비롯한 다른 모바일 메신저 서비스들을 물리칠 수 있었는가?

이대형: 막대한 PC 사용자 기반을 가진 네이트온, 한국의 양대 포털산맥인 네이버의 네이버톡, 다음의 마이피플, 카카오보다 훨씬 빠르게 유저 수를 모았던 인포뱅크의 엠엔톡, 10대들을 타깃으로 한 틱톡, 나중에는 한국의 이동통신 3사가 연합한 조이챗까지. 한국의 모바일 메신저 시장의 경쟁은 정말로 치열했다.

마화텅: 카카오의 가장 큰 강점은 무엇이었나?

이대형: 카카오는 제일 빠른 것도 아니었고, 제일 돈이 많거나 활용할 수 있는 유저풀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당시 네이트온이나 마이피플이 PC 시절에 확보한 사용자 기반을 살리기 위해 유저 통합, 인증을 고민하면서 시간을 끌고 있을 때, 카카오는 스타트업 기업답게 빠르고 과감한 시장 진출을 통해 다른 경쟁자들을 물리칠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진 게 없었기 때문에 '빠른 혁신'에 '최대의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고 본다.

나는 여기서 텐센트의 대단함을 느낀다. 텐센트는 중국의 네이트온(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더 막강하고 대단하지만)이라 할 수 있는 QQ라는 PC 기반의 사용자 기반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떻게 위챗을 성공시킬 수 있었는지 너무 궁금하다.

마화텅: 중국의 모바일 메신저 시장의 경쟁도 엄청났었다. 2010년 10월에 Kik이라는 모바일 메신저가 등장하면서 1개월 만에 1백만의 유저를 모으며 시장의 관심을 모았다. 위챗의 개발은 Kik이 나오고 한달 후인 2010년 11월 19일에 정식으로 시작됐다. 2011년 1월 21일 처음 위챗의 iOS 버전이 출시되었는데, 샤오미의 미챗이 한 달 먼저 출시돼 더 큰 관심을 받고 있었다. 또한 개심의 ‘비두’, 성대의 ‘유니’, 360의 ‘편지’(工具市场由于开心‘飞豆’、盛大‘有你’、奇虎‘口信’) 등 비슷한 기능을 가진 메신저가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다.

이대형: 이미 모바일QQ도 자리를 잡고 있어서 위챗이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QQ가 쌓아놓은 사용자 기반을 파괴할 것이라는 내부 반발, 예컨대 밥그릇 싸움이나 견제가 있었을 것 같은데 어떻게 극복했는가? 실제로 한국의 네이트온이나 마이피플 같은 경우도 이러한 혁신기업의 딜레마로 인해 좌절된 바가 있는데, 텐센트라는 어마어마하게 큰 기업에서 스타트업을 능가하는 변화와 속도를 냈다는 게 신기할 정도이다.

마화텅: 실제로 위챗이라는 프로젝트가 대단히 화려하게 시작된 것은 전혀 아니었다. 광주 연구부의 부사장이었던 장샤오강이 어느 날 메일을 한 통 보내와 전화번호부를 기반으로 한 모바일 메신저 프로젝트를 진행해 보고 싶다고 했었다. 광주 연구부는 QQ메일의 개발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이전에 메신저 서비스나 모바일앱의 개발 경험을 가진 개발자들도 아니었다. 하지만 ‘어차피 세상일은 모르는 거다’라고 생각해 허락했다. 처음 위챗1.0이 출시되었을 때도 사용자 수가 빠르게 증가하지는 못했다. 모바일QQ에서 다 되는 기능이었을 뿐만 아니라 모바일QQ의 경우 이미 엄청난 사용자 기반과 유입채널을 가지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위챗 프로젝트 자체를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았다. 장샤오강을 비롯한 개발팀들도 이러한 이유로 많이 힘들어했는데, 개발팀에서는 “실패해도 괜찮다, 텐센트의 잠재적인 경쟁자들을 이해할 수 있다”라며 자주 이야기했다고 한다.

이대형: 그러한 무관심이 결국 혁신의 원동력이 되었을 것 같다. 처음부터 폭발적인 성공을 거두었다면 아마 QQ를 담당하는 부서에서 "메신저는 내 밥그릇이니까 너네는 메일이나 만들라"고 공격하거나 시스템 통합을 요구하여 개발속도를 더디게 했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어쨌든 내부에서 이러한 시도가 자발적으로 생겨날 수 있고,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조직들의 견제를 넘어서서 내부경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훌륭한 기업문화라고 생각된다. 어떻게 이러한 조직문화를 가질 수 있었다고 보는가? 한국 사람들은 중국의 큰 조직들은 대부분 만만디(慢慢的)에 부패했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마화텅: 이건 한두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부분이긴 하다. 텐센트의 성장과정을 통해 단호하게 밀고 나가 성취하고 계속해서 뛰어난 것을 추구하는 것이 기업정신으로 자리잡은 것 같다.

 

이대형: 위챗이 대륙을 뒤흔들 수 있었던 '진짜' 성장과정에 대해 설명해달라.

마화텅: 위챗이 성장하는 데 3번의 변곡점이 있었다. 첫 번째는 '음성기능'이다. 2011년 4월에 talkbox가 갑자기 돌풍을 일으켜, 음성을 녹음해서 파일로 전송하는 기능을 넣기로 결정했고 개발팀이 몇날며칠 밤을 새면서까지 개발에 박차를 가한 결과 5월 10일 위챗2.0 버전의 출시에 해당 기능을 포함시킬 수 있었다. 음성기능이 유저 수를 크게 늘렸던 것은 아니지만 이용자들의 만족도는 굉장히 컸다. 유저들의 요구를 섬세하게 파악하여 빠르게 적용했던 것이 핵심이었던 것 같다.

두 번째 변곡점은 8월 초 위챗2.5 버전에 출시된 '친구찾기 기능'과 10월 초 3.0 버전에 포함된 '흔들기', '표류병 기능'이었다. 친구찾기 기능은 근방에 있는 위챗 유저들의 프로필, 거리 등을 파악할 수 있었고 친밀한 사람들끼리의 교류에서 낯선 사람들로 교류를 확대하는 기회를 가져왔다. 흔들기는 동시에 흔들고 있는 위챗 친구들을 연결시켜주었고, 표류병 기능을 통해 다른 누군가가 전달한 메시지를 받았는데 모든 유저들이 즐거워했다.

세 번째 변곡점은 '모멘트'였다. 2012년 4월 19일 위챗4.0 버전에 포함된 기능이다. 위챗4.0 버전은 사진을 모멘트로 공유할 수 있고, 위챗 주소록의 친구들이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평가도 하고 글도 남길 수 있다. 동시에 위챗은 인터페이스를 개방하여 제3의 어플리케이션이 위챗 주소록의 친구와 음악, 신문, 맛집 등을 공유할 수 있게 하였다. 이쯤 되어 위챗의 유저는 1억을 넘어서게 되었다.

이대형: 너무 대단하다. Kik이나 talkbox에서 얻은 영감을 서비스에 반영하는 데 3-4개월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은 웬만한 스타트업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정말 놀랄 만큼 빠른 속도다. 대기업 대부분의 경우 자원이 많은 대신 행동이 느린 편인데, 텐센트는 아시아 내 가장 큰 인터넷기업임에도 민첩하게 혁신을 이루어냈다.

나는 마화텅 당신과 대화를 나누면서 텐센트가 크게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다음과 같다고 생각했다.

첫째, 창업자이자 대주주인 마화텅 본인이 인터넷산업의 발전에 대해 뛰어난 안목을 가지고 회사가 나아가는 방향을 잘 이끌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 의사결정이 빠르고 과감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둘째, 내부경쟁이 건전하고 치열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기업환경이다. 이런 기업환경이 없었다면 위챗 프로젝트는 애초에 아이디어도 꺼내지 못했거나, 잘 되다가도 밥그릇 싸움에 휘말려 좌초되었을 것이다.

셋째, 어느새 텐센트는 하나의 인터넷 기업으로서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훌륭한 생태계를 이루어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난 장샤오강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그가 직접 창업해 위챗을 개발하지 않고, 텐센트라는 우산 안에서 위챗 프로젝트를 시도해서 성공했다는 점에서 깊은 인상을 얻었다. 위챗 사례에서 보듯이 텐센트의 직원들과 관련 기업들은 텐센트의 플랫폼 안에서 기회를 얻고 많은 혁신을 시도함으로써 성장하고 있는 것 같다.

클레이튼 M. 크리스텐슨 교수의 “The inventor’s dilemma”를 따르면 성공한 기업들은 성공한 이유로 인해 실패하게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과거 이동통신사 들은 통화료와 문자메시지의 수익이 굉장히 크기 때문에, 위챗과 같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등장하여 대세가 될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자기파괴를 통한 혁신에 실패하였지만 텐센트는 성공했다. 존경스럽다.

마화텅 : 좋게 봐주어서 고맙지만, 이야기한 만큼 혁신을 반복해서 이뤄낼 수 있는 기업문화를 만드는 것이 쉽지는 않다. 텐센트에서도 매년 많은 사람들이 나가서 스타트업을 시작하고 있다보니 그들의 재능을 활용할 수 있도록 텐센트 출신의 스타트업을 지원해주는 투자펀드가 따로 있을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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